Gallery TY 129, Jungang-ro, Tongyeong-si, Gyeongsnagnam-do, Republic of Korea

Phone 055 648 6084 Fax 055 648 7084

copyright© Gallery TY 2016. All rights reserved.

  • Facebook - Black Circle
  • Instagram - Black Circle

Kang, Jong-Yeol

(Korean)

1/1

 

생명력으로 충일한 동백꽃 그림

 

                                                                              박영택(경기대교수, 미술평론)

 

 

여수에 사는 강종열은 동백꽃을 그린다. 여수 오동도는 동백꽃의 본산지가 아닌가?

오래 전 그는 여수의 바닷가 풍경을 진솔하게 담아왔었다. 이후 바다풍경과 수면 아래의 환상적 장면을

그려내기도 했는데 근자에 와서 동백꽃에 ‘필’이 꽂혔다.

그는 자신의 고향 여수라는 공간을 늘상 작업의 소재로 삼아왔고 그것을 기록하고 재현해왔다. 오랜 시간을

지난 그는 비로소 동백을 발견했다.

그는 다양한 동백에 주목해 그렸고 동백이 가득한 숲과 그 섬과 함께 한 바다도 그렸다.

동백 숲에는 새들이 살고 뭇생명체로 가득하다. 그런가하면 서민들의 삶의 공간인 장독대 옆에도 뜨겁게

피어나며 가득 내린 눈 속에서도 피처럼 붉게 핀다. 그런가하면 무더기로 떨어져 참혹하게 죽은 동백은 짧고

덧없는 생의 진실을 발설하고 그러면서도 강렬한 생명을 소진시키는 단호함을 보여주기에 그런 장면 역시

그렸다. 이 동백이라는 소재 역시 여수라는 특정 공간과 관계되어 있으며 아울러 남도 바닷가의 아름다운

풍광과 색채와도 밀접하게 연루되어 있고 특히 그 동백으로 상징되는 여러 의미망과 결속된 자기 자신에 대한 일련의 자화상에도 해당한다는 생각이다.

몇 차례에 걸쳐 그의 작업실에서 그 붉은 동백꽃과 싱싱하고 견고한 녹색의 잎, 그리고 푸르디푸른 바다 풍경을 보았다. 바다와 섬, 동백꽃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러나 자연풍경을 그린 구상화지만 단지 대상의 외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데 머무는 그림이라기보다는

대상을 빌어 그 이면에 자리한 신비스럽고 묘한 기운을 발산해내거나 그것으로 인해 형성된 주관적인 감정을

그려내고자 하는 의도 아래 풀어져 나온다.

사실 그런 그림을 우리가 구상화라고 부른다. 구상은 창백한 모방이나 기계적 재현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강종열은 평생 형상이 있는 그림을 그렸지만 그것은 외부세계를 모방하는 선이 아니라 구체적인 형을 빌어

그것을 공명할 수 있는 어떤 대상으로 매만지면서 탄탄한 조형적 체계의 공간 안에 수를 놓는 작업이었다.

여수 국동 선착장 주변과 그 안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끈끈한 생의 자취와 누추하고 허름하지만

인간적인 흔적으로 가득한 삶의 공간을, 그리고 비근한 일상의 정물을 빌어 비릿한 내음이 질펀한 장면을

그려왔다. 그가 그린 그림들은 항상 자신이 보고 느끼고 체험한 것들의 진솔한 형상화에 놓여져있었다.

그림이 자기 생의 궤적과 동선 속에서 선회하였던 것이다. 그림들은 형태와 색채, 붓질의 자취가 집적되어

모종의 이야기를 ‘짠하게’ 발언하는 그런 음성으로 조밀했다. 표현주의적인 구상화, 혹은 구상화의 틀 안에서

방법론의 부단한 갱신과 변화를 추구하는 그만의 구상화에 대한 천착을 일정한 시간 속에서 밀고 나간 것으로 보인다. 일련의 자연주의적 사실화와는 다른 구상화, 풍경과 함께 하는 인간의 삶에 이야기가 질펀한, 형상성이 강한 그림이었다.

 

그에게 여수는 그의 그림과 동의어다. 그는 자신을 길러 준 여수를 화면 속에 담아왔다.

지금은 동백꽃과 여수 앞바다 혹은 그와 유사한 풍경을 선사하는 섬을 찾아 나선다.

적지않은 시간동안 그는 동백꽃을 집중적으로 그려왔다. 동백나무가 있는 숲이자 동백꽃이 가득한 섬이고 동백나무가 서 있는 장소를 두루 그림의 소재로 삼아왔다. 어느 날 우연히 동백꽃이 다시 보였다. 동백은 늘상 그

자리에 불변으로 자리했지만 그는 새삼 그 존재를 깨달았고 그 꽃을 다시 보게 되었다. 반들거리는 기름진

잎사귀와 부드러운, 붉고도 붉은 꽃잎, 그 강렬한 초록과 빨강이 부딪쳐 내는 에너지와 생명력, 그리고는

무성한 동백 숲에서 나는 여러 소리, 묘하게 번지며 다가오는 기운을 그리게 되었다. 동백꽃은 새삼스럽게

그의 삶의 터에 대한 성찰과 생명력, 자기 존재에 대한 여러 상념으로 몰고 간 것이다. 따라서 동백꽃을 그린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그린다는 의미와 맞닿아있는 셈이다. 그는 동백꽃을 통해 인간 삶의 여러 모습을

엿보고 신난한 생의 고비에 절정을 이루는 생명력의 환희를 느끼고 극단적인 세계를 아우르는 포용과 그로인해 터져나오는 기운을 만나는가 하면 찰지고 윤택한 잎과 아름다운 꽃으로 이루어진 미의 세계를 접하고 이를

그림으로 형상화하고자 한다. 그래서 동백꽃을 그린다. 숲을 그리고 꽃에 근접해서 확대해 그리고 동백꽃이

가득한 섬을 그리고 동백나무가 있는 풍경을 그린다.

 

늘 푸른 큰 키 동백나무는 한자 뜻대로 풀이하면 ‘겨울측백나무’다. 어원을 살피면 ‘산다(山茶)’로 산에 사는

차나무란 뜻이다. 그러니까 동백은 차나무과다. 동백나무 잎 역시 차나무 잎처럼 차로 만들어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동백은 여러 이름을 거느린다.

명산다, 다화, 천다수, 내동, 만산다, 수춘 등이 그것이다. 사실 동백은 우리만 쓰는 명칭이다. 겨울에 꽃이 핀다 하여 동백(冬柏)인 것이다. 옛사람들은 열 가지 이유를 들어 동백을 칭찬했다고 한다. 고우면서도 요염하지

않고 300-400년이 지나도 금방 심은 듯하며 가지가 16미터나 올라가 어른이 손을 벌려 맞잡을 만큼 크다는 점, 그리고 나무껍질이 푸르고 윤기 나서 차나무가 탐낼 정도로 기운이 넘치며 나뭇가지가 특출해서 마치 치켜 올린 용꼬리 같고 나무의 모습이 여러 짐승이 지내기가 적합하며 풍만한 잎은 깊어 마치 천막 같으며 성품은

서리와 눈을 견딜 수 있어 사계절 동안 푸르고 꽃이 피면 2-3개월을 나며 물을 넣고 병에 길러도 10여 일동안 색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여러 이유를 들어 동백을 상찬했던 것이다. 이처럼 동백은 장수할 뿐만 아니라 사계절 진한 녹색이 변하지 않는 데다 겨울에 꽃을 피운다는 사실로 상서로운 의미를 부여받았다. 더구나 윤기가 흐르고 광택이 있는 진한 녹색의 잎 사이로 붉게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에 옛사람들은 자연히

신비함을 느끼고 그 아름다움에 도취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동백은 청렴하고 절조 높은 인간의 이상적인

모습으로 투영되었고 신성과 번영을 상징하는 길상의 나무이자 많은 열매를 다는 까닭에 다자다남을 상징하게 되었다.

 

강종열이 그린 동백꽃 그림은 대부분 붉은 색과 초록색, 파란색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한정된 주조색 안으로 무수한 색채의 향연이 일어난다. 그는 색채를 중시하는 화가다.

남도의 바닷가 풍경은 그에게 햇빛에 비늘처럼 파득이는 사물의 표면을, 빛에 의해 황홀하게 번득이는 화려한 색채의 파동을 원초적인 경험으로 각인시켰다. 비로소 그 색채가 극화되어 정점에 이르는 것이 근자에 그려진 동백꽃과 바닷물과 하늘을 그린 그림에서다. 그래서 그것은 단지 빨강, 초록, 파랑으로만 채워져 있지 않다.

그 색 안으로 형언하기 어려운 다양한 색채들이 어우러져 색채의 열락, 환희를 만든다. 색채들은 짧게 이어지는 단속적인 붓질의 리듬에 따라 촘촘하게 배열되어 있다. 흡사 점묘처럼 다가오기도 하고 찰지게 칠해 나간 흔적이 공존한다. 쫀득거리듯 혹은 까칠한 질감으로 화면을 덮고 있는 이 붓질은 북북 문지른 일반적인 붓질이

아니다. 마치 콜라주처럼 붙여나갔다는 인상이다. 오밀조밀한 붓질은 화면을 다분히 촉각적으로 안긴다. 마치 보풀이 일듯이, 껍질이 죄다 섰듯이 물감들은 붓질에 의해 비벼지고 얹혀진 상황을 오롯이 보여주고 있다.

이 독특한 붓질은 동백이란 대상을 재현하는데 있어 그로부터 받은 인상, 감흥을 적절하게 가시화하기 위해

필요한 방법론의 구사에서 나온 것이다. 그림은 결국 붓질과 색채(물감)로 구성된다면 작가마다 작품의 주제에 맞는, 그리고자 하는 대상에 적합한 붓질의 고안이 요구될 것이다. 지금의 붓질과 물감을 도포하는 방법 역시 동백을 효과적으로 그리는데 불가피했던 측면이 있다.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껍질과 보드라운 꽃잎의 섬유질 질감, 대기 속에서, 빛의 산란에 의해 색채무더기로 가라앉는 바다와 하늘의 자취를 쫓는 붓질이다.

 

그것은 그려진 대상이 단지 그림이 아니라 그 존재가 지닌 물성과 통감각적인 느낌을 동반하면서 보는 이들에게 친밀성과 조응관계를 '확' 좁혀버린다. 그림은 실재와는 별개의 또 다른 독립된 조형체계이다. 그러나 그림은

이 세계에 대해 무관할 수 없다. 회화란 주어진 외부를 그림이란 조형체계 안에 그 작가만의 체위와 내음으로

호출해서 빚어놓은 또 다른 세계이다. 그것은 세계와 한 쌍을 이루지만 기존 세계를 단지 지시하거나 닮음 꼴의 위치에 머물지 않고 한 작가가 보고 느끼고 해석하고 읽어낸 모든 것들을 새삼 환기시키는 그런 ‘이상한’

세계다. 그로인해 우리들은 비로소 세계와 사물에 대해 깊이 있는 시각과 통찰, 사유를 제공받는다.

기존 세계로부터 또 다른 세계로 나가는 것이자 있는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열어나가는 것이다. 강종열이 그린 동백 그림은 결국 동백으로부터 받은 자신의 내면의 것들을 시각화하고 외화하려는 차원에서 길어 올려진 것들이다. 여수와 남도 바닷가 그리고 그곳에 서식하는 어질한 동백꽃이 한 화가에게 낙인처럼 남겨준 모종의 감흥과 인식의 자취, 그 보이면서도 쉽게 보이지 않는 세계가 현재 강종열의 그림 속에서 뜨겁게

숨 쉬고 있다.

1/15